[SNS] 취재뒷담화LIVE

[취재뒷얘기] 부산 신혼부부 실종.. 왜 못찾나?

2016년 5월 27일 밤 11시, 극단일을 마친 최성희(당시 나이 33살)씨가 아파트 승강기에 올랐다. 양손에는 마트에서 산 라면 봉지와 식료품이 들려 있었다. 4시간 뒤인 28일 새벽 3시, 이번에는 최씨의 남편 전민근(당시 나이 34살)씨가 아파트 승강기에 올랐다. 아파트 15층 신혼부부는 이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들이 사라진 지 벌써 2년 10개월. 계절이 세 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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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뭘 합니까? 옷 먼저 갈아입지 않습니까?”

신혼부부 실종사건 수사를 맡아온 담당 형사는 집 내부를 먼저 살폈다. 아파트 승강기 CCTV에 찍힌 이들 부부가 입었던 옷은 어디에도 없었다. 식탁에는 최씨가 들고 있었던 라면 봉지만 그대로 놓여 있었다. 급하게 집을 떠난 흔적은 없었다. 사라진 것이라고는 최씨와 전씨의 여권과 가방, 노트북 뿐. 방 안에는 강아지 한 마리만 사라진 주인을 찾고 있었다.

부부가 살았던 아파트는 22년 전인 1997년 지어졌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동네 한 가운데 지어진 200가구 남짓의 작은 아파트였다. 이 곳에는 CCTV 22개가 아파트 출입구부터 주차장, 승강기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부부의 흔적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비상계단을 통한 사각지대가 있긴 하지만 아파트 밖 도로에 설치된 CCTV 역시 정적만 흘렀다.

실종 추정일인 28일 오전 부산 기장군에서 남편 전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 같은 날 오후에는 서울 강동구에서 최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혔다. 그리고 이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난항에 빠진 수사, 새로운 인물 J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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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신고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경찰은 최씨와 전씨의 카드사용 내역 등 계좌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사라진 이후부터 계좌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실종 부부의 주변 지인과 가족들에게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남편 전씨가 결혼하기 전 사귀었던 첫 사랑이자 옛 애인 J씨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에 따르면 남편 전씨와 J씨는 실종부부 결혼 전후 지속적인 연락을 가졌다. 경찰은 J씨가 부부에게 “결혼하지 말라”는 등의 협박성 연락을 해왔다고 밝혔다.

전씨는 결혼 이후에도 J씨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를 추가로 지니고 있었다. 이 휴대전화에는 J씨와 나눈 문자메시지나 통화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J씨가 부부를 ‘협박’하고 ‘감금’했나?

J씨가 아내 최씨에게도 수시로 협박성 연락을 해왔던 정황도 드러났다. 실종되기 전부터 최씨는 우울증 증세 등으로 병원치료를 받아 왔다. 그런데 경찰이 입수한 병원 진료기록부에는 최씨를 향한 J씨의 괴롭힘이 드러나 있었다. J씨가 최씨에게 ‘결혼을 인정하지 못한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부부 실종 보름 전 노르웨이에 있던 J씨가 국내로 들어온 사실도 드러났다. J씨는 이후 부부 실종 일주일 뒤 다시 노르웨이로 출국했다. 애초 일정보다 빠른 출국이었다. 경찰은 J씨가 ‘비밀입국’에 당시 서울, 대전, 부산 등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밝혔다. 또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입국인데다 현금만 사용하며 국내 찜질방을 이용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실종 부인 최씨의 의료기록과 주변인 진술 내용, J씨의 비밀입국을 토대로 부부 실종사건의 중요 용의자로 J씨를 특정했다. 그리고 J씨에게 ‘공동 강요’와 ‘공동 감금’ 혐의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노르웨이에 있는 J씨를 붙잡기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해 현지에서 J씨를 검거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22일 노르웨이 법원에 J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실종 1년 3개월 만이다.

뒤틀린 ‘범죄인 인도’와 부족한 증거

지난해 말 노르웨이 법원은 용의자 J씨에 대한 국내 송환을 승인하지 않았다. 수사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증거 부족’과 ‘J씨의 출산.’

J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공동 강요’와 ‘공동 감금’이다. 한마디로 J씨가 최씨와 전씨 부부를 ‘협박’했으며, 이들을 ‘감금’해 현재까지 부부를 실종 상태에 놓이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최씨의 의료기록과 주변인 진술을 통해 ‘협박’ 혐의는 어느 정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감금’이다. 부부 실종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J씨의 강요 이외에 부부 주변에 특이한 점이 없었고, J씨의 국내 입국 이후 부부가 실종됐으므로 부부를 ‘감금’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부부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고 남은 의심인물이 J씨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J씨가 실종 부부를 감금했다고 추정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J씨가 비밀입국한 뒤 ‘부산’에도 왔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J씨의 고향 역시 부산이다.

주변 진술로 J씨의 병적인 집착과 부부를 향한 그동안의 과격한 언행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진술만으로는 J씨가 부부 실종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심\′은 해볼 수 있어도 법적인 \′감금\′ 혐의까지 닿기에는 역시 연결고리가 부실하다 . 오히려 J씨측은 실종남편 전씨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결국 노르웨이 법원은 J씨의 국내 송환을 거부했다. 노르웨이 법원은 “형의 선고가 아닌 기소를 근거로 한 범죄인 인도 요청 시 합리적인 근거를 충족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고 불승인 사유를 밝혔다. 국내에서 제공한 수사 자료들을 사실상 ‘부실자료’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범죄인 인도 재판 도중 J씨가 아이를 낳은 사실도 ‘불승인’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부가 J씨의 여권을 말소하면서 J씨는 노르웨이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구속 수사’를 받아야 할 자가 출산을 할 경우 ‘불구속 수사’를 받는 것처럼 ‘인도주의적 요소’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쪽 관계자 역시 “J씨가 2017년부터 출산을 위한 인공수정을 시도했으며, 2018년 10월쯤 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출산일을 역으로 계산해보면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때쯤 임신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계획된 것 아니었겠느냐”고 덧붙였다.

시기 놓쳐 항의 못한 수사당국, 늑장 ‘공개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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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와 검찰은 노르웨이 법원에 항고할 기회마저 놓쳤다. 노르웨이 법원이 J씨의 범죄인 인도 거부를 결정한 날은 지난해 12월 5일, 항고 기한은 단 3일이다. 그러나 주노르웨이 대사관은 이 사실을 한달이 지난 이듬해 1월 4일 알게 됐고, 법무부는 열흘 뒤인 1월 14일, 수사를 담당한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1월 22일 불승인 내용을 전달받았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미 법원 판결 전인 2018년 10월 J씨의 임신과 통역 문제로 공판이 12월 2일로 미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흘 뒤인 12월 5일 노르웨이 법원은 J씨의 범죄인 인도를 거부했다. 막판 무관심 탓에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해본 것이다.

검경은 범죄인 인도를 재청구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자료 이외에 새로운 자료를 내놔야 하는 처지다. 검경은 사실상 합동 수사를 결정했다. 과거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며 빠진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수사 내용을 검찰과 경찰이 수시로 공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년이 흘렀다. 있었던 증거도 모두 증발했을 만한 시간이다.

최근 남편 전씨의 신상을 공개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 역시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온라인에 먼저 공개된 부인 최씨의 신원과 달리 남편 전씨의 신원은 이제야 공개됐다. 공개시기를 앞당겼었다면 실종부부의 더 많은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았겠느냔 것이다. 경찰은 성인 실종은 대부분 ‘가출’로 판단해 인권침해적 요소를 배제하고 있으며 남편 전씨의 가족이 그동안 신원 공개를 거부했다고 해명했다.

“J씨는 ‘용의자’이자 ‘중요 참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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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해 보일 정도의 혐의가 J씨에게 적용된 이유는 ‘J씨의 입’ 외에 부부 실종사건을 풀 단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실 수사\′였다는 비판과 동시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체포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도 받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충돌한다.

범죄인 인도를 거절당한 직후 경찰은 “J씨에게 수사 협조 요구”라는 황당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J씨의 진술 이외에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3년 가까운 수사 치고는 다소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찰은 ‘공개수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의미한 제보는커녕 사건에 대한 관심마저 흐릿해지고 있다. 사라진 아내 최 씨의 어머니는 딸을 애타게 찾으며 여전히 경찰서를 오가고 있다.

송광모 기자 kmo@busa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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