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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끝없는 부산 사랑' 리챠드 위컴 장군

◀앵커▶

부산에 있는 UN기념공원은
6.25 한국전쟁에 참가한
UN군 장병들이 묻힌
전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UN묘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묻힌
2천여 명의 군인들 가운데,
한국을 너무나 사랑해
죽어서까지 이 곳에 묻히기를 고집한
한 미국 장군의 묘지가 있습니다.

이 주인공의 사연을
정세민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부산시 남구 대연동 UN기념공원!

한국전쟁에 참여한
세계 11개국 2,309명의 장병들 묘 가운데
유일한 장군 리챠드 위컴 !

1·2차 대전 참전 영웅인 그는
1953년 미 제 2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부산과의 각별한 인연을 맺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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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앞 대화재!

피난민촌이던
영주동과 부산역 일대를 덮친 큰 불로
29명이 숨지고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위트컴 장군은 창고에 있던 군수물자로
이재민을 위한 천막을 짓고
식량과 의복을 제공합니다.

고맙고 감동적인 일이지만
이 일로 미의회의 청문회에 소환됩니다.


박종왕 관장
UN평화기념관
" 전쟁은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이듬해인 1954년에는
부산대 윤인구 초대총장으로부터
대학건물을 지을 부지와
돈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이승만 대통령과
당시 미 8군 사령관 테일러 대장을 설득해
지금의 부산대 부지인
장전동 일대 50만 평의 땅과
건축비용 25만 불을 받아 옵니다.


김재호 교수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위트컴 희망재단 이사)


또 현대식 의료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부대원들과 병원기금 모금운동을 벌여
지금의 메리놀 병원과
성분도 병원 등의 설립에 기여하게 됩니다.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위해
보육원과 고아원을 지원하며
퇴임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모금을 위해서라면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기도 했던
고아의 아버지이자
영원한 휴머니스트 위트컴 장군은,

제2의 고향인 한국의 UN묘지에
묻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1982년 89살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고
부산사람보다 부산의 미래를 더 걱정했던
리챠드 위컴 장군은 세상을 떠나서도
이곳 부산UN기념공원에서
대한민국과 부산의 발전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MBC뉴스 정세민입니다.
정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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