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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R]① 대각사와 당감성당

◀앵커▶

87년 6월 항쟁, 벌써 32년이 흘렀습니다.

전국 어느 도시보다 뜨거웠던 부산의 6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잊고 산 건
아니었던가.

그래서 올해는 6월 항쟁의 성지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32년전 오늘.6월 항쟁의 시작을 알린
6.10 국민대회부터 가보겠습니다.

황재실 기자입니다.


◀리포트▶


 고호석(서면시위 그림덮음)
"부산처럼 6월10부터 29일까지, 줄창 시위를 한 데가 전국적으로 없어요. 꾸준하게 했어요."

6월항쟁의 서막을 알린 6.10 국민대회.

부산의 6.10대회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이 조그만 사찰이
중심이 됐습니다.

이강원(불교연합회장)
"87년 1월부터 모든 집회의 중심에 대각사가 있었고, 거기차단되면 남포동, 서면..."

물고문을 받다 숨진
대학생 박종철에 대한 추모열기가
이곳으로 집중됐던 겁니다.

아들을 죽여놓고 '위로'봉투를 건네는,
경찰의 당당한 모습이,
부산시민들을 격앙시켰습니다.

대각사는 6월항쟁 초반, 경찰의
최후 저지선이었습니다.

이강원(불교연합회장)
"경찰병력이 시위대보다 많았어요. 뚫을수있는 방법이 없었고. 옮겨다니면서 게릴라식 시위."

박종철의 죽음은 헌법개정 운동과 맞물려,
유례없는 시민결집으로 모아졌습니다.

바로 부산 국민운동본부의 탄생입니다.

부산진구 주택가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

87년 5월 20일.

이 성당에서,
대학생, 정치인, 노동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결집한 부산국본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출범합니다.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가 앞장섰습니다.

배성환 (국본 학생대표)
"부산은 노선차이도 없었고, 의견대립없이 비교적 단결이 잘됐습니다."

국민운동본부는
범내골에 위치한 이 허름한 건물을 상황실 삼아
시민시위를 조직했습니다.

배성환 (국본 학생대표)
"(국본이)오히려 시민역량에 못미쳤다..부산은 전체적인 시민들의 역량이 전국에서 최고였지 않았나.."

그해,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6월의 기억은
부산의 항쟁성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MBC뉴스 황재실입니다.

황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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