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가려진 6월 항쟁의 기억′ 이태춘 열사


◀ANC▶
6월 항쟁 하면
매캐한 최루탄 연기, 그리고 \′이한열\′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하지만 고 이한열 열사처럼
최루탄에 맞아 숨진, 한 부산청년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죠.

6월 항쟁의 최전성기였던 32년전 6월 18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임선응 기자의 보도 들어보시죠.

◀VCR▶
부산의 한 가운데.
도심을 관통하는 서면 중앙로입니다.

예전에는 서면 천우장 앞이라고 불리던 곳.

(과거 그림으로 화면 전환)

지금부터 꼭 32년 전의 모습입니다.

6월 항쟁의 최전성기였던 6월 18일.
백만시위대가 이 도로를 꽉 메웠습니다.

◀INT▶시위 참가자 PIP
"양정에서부터 범내골까지 발디딜 틈 없이 시위대가 모였거든요. 경찰들이 전부 무장해제했습니다, 스스로. 진압할 방법이 없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스물 다섯 청년 이태춘도
이 시위 물결 속에 있었습니다.

늦은 밤, 남포동쪽으로 향하던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과 맞닥뜨렸습니다.

◀지랄탄 현장음▶

시위대에 날아온 최루탄이
이태춘씨 머리위로 떨어졌습니다.

(현재 그림으로 화면 전환)

좌천고가교로 불리는 이 곳에서
그는 추락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INT▶
"병원에 가니까 (아들이) \′엄마\′ 소리는 못 하고 \′최루, 최루, 최루탄, 최루탄\′ 이렇게 하고 있었어요."

부산시위가 최정점을 찍었던 이날.

청년 이태춘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날은
\′최루탄 추방의 날\′이었습니다.

(동아대 6월 항쟁도로 화면 전환)

담쟁이 넝쿨에 가려진 빛바랜 벽화.

낡은 그림 속에 이태춘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습니다.

◀INT▶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계속 표현하는 그 모습 자체를 벽화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이 담쟁이 안에
갇혀있는 걸까요?

보수정권 시절, 학교 측이
그의 흔적을 지우려고
이 담쟁이를 심었다고 합니다.

◀INT▶
"6월 항쟁도 벽화를 복원해서 부산시민과 동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민주화 유적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태춘 사망 10년 뒤
인권변호사 문재인은 그의 가족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지만,

국가는 시효가 지났다며
기각해버렸습니다.

MBC NEWS 임성응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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